JL photo

[플라톤 아카데미 인문학 대중강연] 4회. 경계와 차이를 넘어 함께 사는 지혜 본문

순간의 순간/플라톤 아카데미 - 어떻게 살 것인가?

[플라톤 아카데미 인문학 대중강연] 4회. 경계와 차이를 넘어 함께 사는 지혜

Jon Lee 2014. 10. 8. 15:53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 인문학 대중강연 - 어떻게 살 것인가? 4회는


"경계와 차이를 넘어 함께 사는 지혜"라는 주제로


고려대학교 철학과 조성택 교수님이 진행하셨다.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서로의 차이를 화쟁적 대화를 통해 이루자는 주제의 매우 흥미로운 강연이었다.


이번 강연의 포인트를 짚어보자.

















교수님은 강연을 시작할 때 우리가 강연의 마지막에 답해야 할 질문을 던지셨다.




"인문학 아고라에서 바라본 세계의 중심은 어디인가?"




"어떻게?(How?)"라는 질문은 앞만 보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필요치 않은 질문이며, 물어봐서는 안 되는 질문이다.


일제 식민시대부터 산업화 시대를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앞만 보고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여유를 생각할 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대두된 계기는 IMF 이후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은 없었고, 우리는 그 질문을 미뤄왔다.


하지만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이후 이 질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암묵적 합의(Consensus)가 국민들 사이에서 생겨났다.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이 질문을 만든 것이고, 답도 우리가 찾아야 한다.






『 지금 나에게는 칼도 경도 없다.


경이 길을 가르쳐주진 않는다.


길은,


가면 뒤에 있다. 』


- 황지우, '마음 속 지도 별자리' 中



우리는 우리의 삶에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길은 없다. 다만 돌아온 길만이 보일 뿐이다.


지난 3회 강연 때와 같이, 돌아온 길을 통해 앞날을 대비하는 것이 올바른 길일 것이다.


고전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이 나왔다.



『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사는 것'이다. 』


- 소크라테스



훌륭한 삶에 대한 고전적 가치와 현대의 가치는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시대의 훌륭한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경계와 차이를 넘어 함께 사는 지혜"이다.






아름다움도 결국 서로 다른 것의 어울림이다. 인간 사회도 자연과 같이 조화가 최선이다.


이주 노동자, 외국인, 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사람과 인종이 한국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는 이 사회에서


이념적인 대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난제이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우리는 현재 갈등과 분쟁의 현장 속에 살고 있다.


광화문에서의 대립,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용산 참사, 진주 팽목항 등등 전국 어디서나 갈등과 분쟁의 현장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갈등과 분쟁이 일상화되어 있다 보니 이것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예전에는 분쟁과 갈등을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정부 자체가 분쟁과 갈등의 당사자가 된 상태이다.


역사적 세대관이 달라서 차이가 발생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세대관의 차이가 분열로 번지는 것이 문제이다.


이 우울한 분열의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현재 열리고 있는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손연재의 안티팬이 생겨났는데,


이 안티팬의 대부분이 자신들이 김연아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손연재를 안티한다고 말했고, 실제로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 대학교 자체에서 교내 기숙사를 많이 짓고 있는데, 원룸과 하숙집 주인들이 이에 반발해 데모를 일으킨 적도 있다.


북한에 대한 원조 찬성론자와 원조를 못하게 하는 것이 인권침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종북으로 간주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 질문들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옳음과 저들의 옳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인가?


과연 단 하나의 옳음만이 존재하는가?


이견은 분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가?


다른 것에 대한 인정과 포용은 불가능한가?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한가?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려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코틀랜드의 독립에 대해 "의견은 다르지만 모두 스코틀랜드를 사랑한다"고 말하였고,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에 찬성하는가?' 라는 질문에 "찬반론자 모두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다"고 말하였다.


이 둘 모두 정치적인 발언을 한 것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알맞은 발언을 한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통합적 사고가 발현되었다고 본다.






"Democracy demands the wisdom of citizens."


"민주주의는 시민의 지혜를 요구한다.


"예술과 인문학은 명백한 사회적 공공재이고, 번영하는 문화는 생기넘치는 사회의 핵심적 요소이며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하는 힘이다."


미국 NEH(National Endowment of Humanities)에서 발행한 미 대통령 예술 및 인문학 위원회 보고서(Creative America)에서 내걸은 말이다.


이 말과 같이 우리에게는 시민의 품격, 문화적 품격을 가진 일상적 실천으로써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화쟁(和諍)이란 무엇인가?


화쟁이란, "'부분적'인 여러 경전들을 통섭하여, 여러 갈래의 흐름을 '한 맛'으로 돌이키며,


"또한" 부처님의 지극히 올바른 '뜻'을 열어 전개하여,


여러 학파들의 이쟁을 화회한다"는 뜻을 갖는다.


개시개비(皆是皆非)라는 말로도 풀이 가능한데,


이는 개별 경전의 '부분적 진리성'을 인정하고, 다(多)의 공존과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것이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질 때 코끼리에 대해 모두 다르게 표현하는 것과 같이,


우리 모두는 '부분적 진리'를 갖고 있지만 자신의 진리만을 인정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진리도 옳다고 보자는 것이다.


이런 사상을 통해 우리는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화쟁은 대화의 철학이다.


논쟁과 대화의 차이를 알아보면 논쟁은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입증하는 과정이지만, 대화는 그것이 왜 옳은가를 바라보고 공감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논쟁은 반드시 대화로 이어져야 한다.


정의와 화쟁의 관계를 따져보면, 의로움 뿐 아니라 어짊이 중요하다.


즉 화해가 전제된 진실이 필요하다.






그러면 화쟁적 대화란 무엇인가?


화쟁적 대화는 경청하고 공감하는 과정이다.


경청할 때는 주관을 체념하여 '내가 비어있어야' 하고,


공감할 때는 동정과 연민의 관점을 넘어서 타인이 되어보아야 한다.


미국 미주리 주의 낙태문제를 예로 들어보겠다.


미주리 주의 낙태 불법 입법과정에서 낙태를 반대하는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심한 테러를 일으켰고,


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여러 차례 있었다.


결국 낙태불법은 입법화 되었지만, 입법화 이후 낙태를 반대하는 데 주요한 한 사람이 신문에 글을 기고하였다.


"현재 미주리 주 부모의 55%가 한부모 가정이다. 낙태 찬성론자들과 협력을 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미주리 주의 이야기는 결국 이념적 대립은 이념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다를 뿐 그 지향점은 같다는 것을 시사한다.






체념 또한 민주사회에서 시민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체념의 뜻은 두 가지가 있다.



1. 희망을 버리고 단념함


2. 도리를 깨닫는 마음



원래 뜻은 두 번째 뜻으로, 이는 기다리는 마음, 긍정적인 희망에너지를 뜻한다.


작가가 글을 쓸 때는 주관을 체념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고 한다.


작가가 글을 쓸 때의 마음가짐을 우리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날 한국의 종교인들을 위한 한 교훈이 있다. 고대 인도의 왕조 제 3대 왕인 아쇼카 왕이 한 말이다.




『 저 아쇼카 왕은 모든 종교의 신자를, 그들이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모두를 존경합니다.


각 종교마다 기본 교리는 다를 수 있으며… 자신의 종교는 자랑하고 남의 종교를 비판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자신의 종교를 선전하느라 남의 종교를 비난하는 것은 어떤 의도에서건 자신의 종교에 오히려 더 큰 해악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조화가 최선입니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의 가르침에도 귀 기울이고 존경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자신의 종교도 발전하게 되고 진리도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


- King Ashoka(304~232 BCE) 마애법칙 제 12장 中












교수님께서 강의 시작 전 "인문학 아고라에서 바라본 세계의 중심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하셨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세상이 아픈 곳"이다.


세월호 사건에 의한 광화문에서의 대립, 밀양 송전탑에 대한 분쟁,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분쟁,


법 개정에 대한 문제 등등의 커다란 문제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고,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이 주제들을 던지기만 해도 서로의 관점이 다르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게 되어 쉽게 커다란 싸움으로 번지는 세상이 되었다.


이 문제들을을 편하게 이야기 하기는 힘들겠지만, 조성택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화쟁적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화해점을 찾아가는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하여


모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바를 허심탄회하게 꺼내놓을 수만 있다면


이 문제들이 풀릴 것이리라 믿고, 앞으로의 사회문제나 개인간의 문제 또한 잘 풀릴 것이라 믿는다.


우리 개인과 사회가 체념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통합적인 사고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5회 강연은 구글의 명상가 차드 멍 탄, 서울대학교 최인철 심리학 교수님의


"행복에 관하여 - 마음 vs 몸"이다.


몸과 마음을 키우는 비중을 어떻게 두어야 행복에 가까워질지, 행복에 고급한 행복과 저급한 행복이 구분되는 지 등에 관해


좋은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