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L photo

[플라톤 아카데미 인문학 대중강연] 9회. 시와 타자의 목소리 본문

순간의 순간/플라톤 아카데미 - 어떻게 살 것인가?

[플라톤 아카데미 인문학 대중강연] 9회. 시와 타자의 목소리

Jon Lee 2014. 11. 14. 00:46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 인문학 대중강연 - 어떻게 살 것인가? 9회는


"시와 타자의 목소리"라는 주제로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황현산 명예교수님께서 진행하셨다.


이번 강연은 한시간은 교수님의 작은 목소리와 더불어 마이크 세팅이 잘못되어 집중하여 들을 수 없었지만


시와 소설에 관심이 있던 나로서 남은 한시간을 최대한 경청하여 들었다.


이번 강연의 내용을 짧게 짚어보자.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 같은 큰 목소리에서 우리는 소외되어 있지만,


외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사정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당신의 사소한 사정」, "밤이 선생이다"에서






시와 소설은 우리가 갖고 있는 작은 이야기들을 표현해주는 좋은 도구이다.


교수님의 저서들은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그림과 사진을 표지로 삼았다.


그 표지들은 내세워진 나와 감추어진 나를 구분하라는 의미에서 교수님이 직접 요청했다고 한다.




세상에는 주체성이 있으면서도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노숙자와 영원한 타자가 그 예이다. 여기서 영원한 타자는 "내가 인정하기 싫은 나"로 해석되기도 한다.


(성석제의 소설 "투명인간"이 생각난다..)




교수님은 레몽 크노의 "작시법3"을 읽어주며 시는 장난하듯이, 사기치듯이, 단순한 생각과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알고보니 그것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어느 시인은 신문에 시를 기고하고 나서 유명해진 후 그만의 주체성을 잃어 더이상 시를 쓸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시나 예술가로서의 삶이 이렇듯 우리의 삶도 자신의 주체성을 지켜야 진정한 나로 살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나 시나 있어보이게 하는 것은 쉽지만 없어보이게 하는 것은 어렵다.


시가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방식이 자유를 의미한다.




교수님은 '시는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며


기형도의 "빈 집"을 읽어주셨다.






빈 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시의 각 구절과 단어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에서 사랑을 잃었기 때문에 쓰는 것인지 혹은 그저 사랑을 잃은 후에 쓰는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고,


"가엾은 내 사랑"에서 내 사랑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인지, 사랑하던 사람에 대한 감정을 말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수도 있다.


삶도 시처럼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하고 다양한 생각을 허용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시를 읽으면 삶을 알 수 있고, 말귀를 잘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관용을 베풀게 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시를 많이 읽을 수록 삶의 깊이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이번 강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집중하지 못한 강의여서 조금 아쉬웠다.


다음 마지막 강연은 서울대학교 손봉호 명예교수의 "아프게 하는 사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윤리"이다.


드디어 다음주 강연이 마지막 강연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가치관을 잡았으니, 실천의 문제만이 남은 것 같다.


실천하는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