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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아카데미 인문학 대중강연] 6회. 행복한 삶을 위한 5가지 원리, 고통을 넘어서는 희망 본문

순간의 순간/플라톤 아카데미 - 어떻게 살 것인가?

[플라톤 아카데미 인문학 대중강연] 6회. 행복한 삶을 위한 5가지 원리, 고통을 넘어서는 희망

Jon Lee 2014. 10. 23. 16:20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 인문학 대중강연 - 어떻게 살 것인가? 6회는


"행복한 삶을 위한 5가지 원리"라는 주제로 동사섭 행복마을 용타섭 스님이,


"고통을 넘어서는 희망"이라는 주제로 카톨릭대학교 철학과 박승찬 교수님이 진행하셨다.


이번 강연도 저번 5회 강연과 같이 두 명의 연사가 강연하셨는데,


플라톤 아카데미는 이번 강연에 종교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자 불교와 기독교 강연을 마련했다고 하였다.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생각과 같이, 종교간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행복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행복과 희망에 관한 강연을 다시 살펴보자.

















용타섭 스님은 동사섭 행복마을에서 5박 6일의 행복 수련을 가르치고 계시는 분이다.


스님이 진행하시는 훈련을 받으면 이혼하려는 부부도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고 하셨다 ㄷㄷㅋ


한 시간의 짧은 강의였기 때문에 용타섭 스님은 행복한 삶을 위한 5가지 원리를 먼저 설명하셨다.




<행복한 삶을 위한 5가지 원리> - 이상공동체 5요


1. 나는


2.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3. 마음 잘 닦아서 마음 천국 만들고


4. 사이 좋게 지내서 관계 천국 만들며


5. 역할을 잘 해서 세상 천국 만들리라~!




이 다섯 가지 원리는 기본 상식이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상식조차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 요즘 세상이다.


이 다섯 가지 원리는 공부를 하면 각각의 수준이 높아진다.


그리고 그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깨달음과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인간은 "사색"을 한다. 사색이란 어떤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지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났을 때부터 인생의 화두가 생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인생을 마구잡이로 사는 사람도 있다. 마구잡이로 사는 삶은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기 때문에 괜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습관이 나쁜 버릇으로 빠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고치기 위해 이 인생의 화두를 스스로 던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삶"이다.


우리는 삶에 대해 생각하는데,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추구하는 바에는 복합적인 요소가 엮여 있다.


그 복합적인 요소 중 삶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 하나가 삶의 90% 이상을 결정하고,


더 사유해보면 한 요소가 개인의 삶의 99% 이상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핵심 요인이 바로 "가치관"이다.


가치관은 심보, 마음가짐, 태도, frame으로도 말할 수 있다.


가치관을 설정하는 것은 "대오각성(大悟覺醒)"을 하는 것 정도로 중요하다.


그리고 가치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가치관은 이 세상 최고의 원수가 될 수도, 최고의 은혜가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한 생각의 차이로 자신의 세상은 천당이 되고 지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세상은 지금 혼란스러운 시기라 가치관 폭력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치관 폭력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존중과 교류의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부정적인 자아관은 스스로를 불행으로 끌고가는 악마이자 사약이다.


만약 자신의 가치관이 그러하다면 그 부정적인 자아관에서 당장 벗어나고, 세상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더 본질적으로 바라보라.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feelling, 기분 좋음이다. (이에 관해서는 긴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 모두의 행복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의 행복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vision이라고도 한다.


범위는 스스로 정하되, 되도록이면 온 우주를 안아줄 정도의 비전을 갖도록 노력하자.




"나"가 "비전"을 향하여 나아가는 방법은 마음을 닦고 관계를 돈독히 하며, 자기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아와 청정의 단계, 즉 "나"가 없어지고, 선과 악의 구분, 시비를 넘어서는 단계가 되면 행복해진다.


그러한 단계에 다다르기 위해 우리는 습관성을 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인 삼박자"라는 것이 있는데,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 하는 행동이다.


용타섭 스님의 강연은 지인 삼박자를 통한 가가대소를 마지막으로 끝맺었다.



"지인은 나는 행복하다를 세 번 선언하고 온전히 웃는다."

















박승찬 교수님은 독일의 아우토반 이야기를 꺼내며 강연을 시작하셨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질주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일상 안에서 그렇게 질주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주 상태에서는 예상치 못한 사고를 만나거나 "Burn-out" 증상으로 모든 힘을 잃을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고통을 부끄럽게 여겨 감추고 도망치는 성향이 발생하고 있고,


정신적 고통도 빨리 잊으려는 성향도 발생하고 있다. 힐링이란 말로 남에게 고통을 덜어달라 부탁하는 것이 그 예이다.


철학가 니체는 "고통이 아니라, '고통이 의미없음'이 바로 저주"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고통에 대한 구분을 선행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고통에 대해 "죄에 대한 징벌"이나 "인간에 대한 신의 시험과 교육"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이러한 편견들을 버려야 한다.


고통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구분할 수 있다.



1. 고통 체험 자체 vs 고통의 유용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고통은 그 자체로 악"이라고 하였다. 반면 고통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2. 지양될 수 없는 고통 vs 지양되어야만 하는 고통


인류에 지양될 수 없는 고통은 죽음, 질병, 노쇠와 같은 피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반면 지양되어야 하는 고통은 세월호 사건과 같은 인재(人災)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을 뚜렷이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고대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주의를 추구하며,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곧 행복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주의에 대해 알아야 할 점은 그것이 단순히 관능적인 즐거움이나


성적 쾌락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 함께 생각을 공유하는 방식의 삶을 살았다.



"적절한 절제를 통한 지속적인 즐거움과 건강을 누리며 자족하라."



그들은 친구들과 철학적인 성찰의 나눔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이 진정한 쾌락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들의 쾌락주의는 세속적인 행복관(돈, 명예, 권력, 쾌락)에 반하고 진정한 희망을 찾으려 한다.




브로니 웨어는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로 이 것들을 말하였다.



1. 모든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2. 너무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3. 내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있었더라면


4. 친구들과 좀 더 자주 시간을 함께 보냈더라면


5. 나 자신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했더라면


(이 중에서 교수님이 가장 강조하신 말씀은 2번과 4번이었다.)




로마 최후의 철학자 보에티우스(Boethius, 480~524/5)는 젊은 나이에 세속적인 성공을 맛보았으나,


정의에 입각하여 불의에 대한 준엄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부패한 로마 제국에서 반역자로 낙인찍혀 처형을 기다리기 전 유배지에서


"철학의 위안(De consolatione philosophiae)"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그는 철학의 여신이라는 상상의 인물을 설정하고 심오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그가 생각했던 것은 대략 이러하다.



"고통은 본래 주관적인 것. 고통의 의미는 자신만이 발견해야 한다."


"각자 자신만이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악인의 행운은 겉보기에 행운일 뿐, 참된 행운은 선인의 행운이다."




그동안 줄곧 고통에 대한 이야기만 했는데, 지금부터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그리스도교 최고의 스승인 아우구수티누스(Augustinus, 354~430)는 방황하는 시절이 많았던 보통 사람이었는데,


극적인 체험을 연속적으로 경험하고 회개하게 되어 끝내는 히포의 주교가 되었다.


그의 저서 "신국론(De civitate Dei)"은 아우구수티누스가 처한 로마제국 말기의 처참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저서에는 더 이상 국가에 기대할 수 없을 때 새로운 이념적 이상 "신의 나라"에 대한 생각이 적혀있다.


이는 종말론적인 희망을 통해 가장 암울한 현실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지닌다.


또한 그는 신국론에서 정의로운 국가의 추구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 정의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


- 선한 정의와 법은 단순히 힘에 의지하지 않고 도덕적 근본을 지니고 있을 때만 유지됨


- 신의 나라는 참다운 정의를 찾을 수 있는 곳




결국 고통을 넘어서는 희망은 "사랑"이다.


이태석 신부님, 김수환 추기경님, 그리고 사랑을 전하는 이들 모두 아우구수티누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행하라." (Dilige et quod vis fac!)



사랑의 힘만이 극도의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한다.












이번 용타섭 스님과 박승찬 교수님의 강연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자신과 남을 사랑하는 법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불교학교에서 공부했지만 종교가 없고 종교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은 나에게는


박승찬 교수님의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시간에서 나온 질문과 답이 매우 인상깊었다.


(아래의 질문과 답변은 그 당시 그대로 써나가지 않았으나 대략적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질문자 : 저도 교수님과 같이 기독교인입니다. 교리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야 한다고 하는데,


인간의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교수님: 이렇게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기독교에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의 자유의지가 주어졌다고 생각하면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섭리를 조화롭게 하여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자 : 세상에는 이태석 신부님과 같이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며 천국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은 어떻게 천국으로 갈 수 있을까요?


교수님 : 천국으로 간다는 표현보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이 지금 우리 세대에까지 전파되는 것처럼,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사람의 사상이 먼 후대에까지 전달된다면 그것으로 이미 천국에 가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록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이런 사고방식을 갖는 것이 참 종교인의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 강연은 어느 종교든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사랑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멋있는 강연이었다.









다음 7회 강연은 한국그런포스펌프 이강호 회장님의


"글로벌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글로벌 시대에 20대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살아가야 할 지 다음 강연을 통해 생각해 봐야겠다 :)